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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출근 후 소소한 팬질을 위해서 경찰박물관(서대문역)에 들렀다가,

서대문형무소가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들렀다 가기로 했다.

예전에 공연쪽 일을 잠깐 할때, '충무아트홀'이 충무로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다가

제대로 낚인 적이 있는데 (충무아트홀은 '신당역'에 있다. 그리 멀진 않지만.)

또 비슷한 식으로 생각을 했던거였다.


지금은 서울 지하철의 역간이 그리 멀지 않다는걸 알지만

아마 예전같앗으면 갈 생각을 안했을지도 모르겠다.

경찰박물관은 서대문역,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독립문역에 있다.

서대문 역에서 중앙대병원 방향으로 걸어서 10분정도 내려가다보면

(독립문 역이 어디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립문이 보인다.






때마침 독립문-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조성된 서대문독립공원 사이에서

'2012 서대문 독립민주 Festival'이란 행사를 하고 있었다.

서대문구에서 정기적으로 여는 구청 행사라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운 좋게 행사도 있는 날 올 생각을 잘 했구나 생각했었다.

사람이 많은 것에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보니 맘편하게 생각했나보다.


아,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해도 관심은 있는 편이라

이것저것 책 읽은것도 많고 시험도 쳐보고 했는데

독립문 앞뒤 현판이 한글-한문인 사실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교과서 사진에서도 한글만 봤던 터라, 한문현판은 없는줄 알고있었다.

난 도대체 뭘 공부했던건가, 사소한데서 좌절했다.


교과서로만 봤던 독립관.

남아있을지는 몰랐는데, 복원하면서 지층도 만들어서 교육관으로 쓰고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무식이 드러났다.


축제에서 프리마켓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만 사람이 엄청 많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부스들은 준비가 덜된 상태였고,

벼룩시장에 물건이 상당히 쌓여잇는 상태였다.

점심시간쯤 도착했더니, 여기저기 구경하는 사이에 서서히 사람이 몰렸다.

사진은 3.1운동 기념탑 앞에서 독립문 방향을 찍은 것.

멀리 서재필 동상과 독립문이 보인다.


여기서 깨달았다. 찍어야 할 것들이 서브가 되는 광경,

와야 할 날짜를 잘못 잡았구나.


어찌됬건 원래의 목적에 따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이동.

어른 개인의 입장료는 1500원. 부담 안되고 적절한 가격이었다.



별 생각없이 돌아다닌 티가 너무 나는게, 서대문형무소 외부 사진이 전혀 없더라.

원래 사진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혼자 눈으로 돌아보기 바빴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사진이 거의 없다.

역사관에서 지정한 관람 순서에 맞게 화살표를 따라,

또는 자원봉사자들의 방향지시에 따라 이동했다.





중학교 졸업여행이 어렴풋이 기억은 나서,

현재 전시관으로 사용중인 본관이 보안과 청사였다는 정도는 알고 들어갔다.

1층으로 들어가서 몇가지 유물들과, 독립운동사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들이 전시된

전시관을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판넬에 적힌 모든 글을 읽고 다녔다.

보이스카웃, 걸스카웃 어린이들이 단체관람을 왔었는데,

'역사알리미'라는 이름표를 달고있는 분들이 아이들을 인솔하면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셨는데

나는 덕분에 신청도 대기도 없이 양질의 도슨트 서비스를 받으면서 돌아볼 수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공간에 역사안내전시가 되어있고, 사형장도 복원되있다.

2층의 마지막으로는 추모공간을 지나게 된다.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이 없어서 역사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

옆에 있는게 안중근, 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부.

저런 기록부가 타일로 제작되서 추모공간 내부에 도배하듯 붙어있다.

바닥에는 흰 스크린에 영상이 프로젝터로 재생되는데,

'고통스러운 기억과 공간에서 이제 그만 나와서

 당신들이 목숨걸고 지켜주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성장을 지켜봐달라'는 요지의 영상물이다.



지층으로 내려가면 일제의 물고문실, 손톱찌르기 고문실, 독방, 취조실, 취조대기실을 복원해 두었는데

음 뭐랄까, 기분이 이상했다.

추모관의 영상을 본 후에 바로 내려온게 고문실인데,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둔 모형들의 표정이라던가

고문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화감, 시멘트 벽의 축축하고 칙칙한 분위기,

어두운 조명과 공간 자체의 느낌이 소름끼쳐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고문실을 지나치면 나오는 대못상자.

드라마 '각시탈'의 영향이 참 컸는지 여기서 어린이들이 제법 시끄러워졌다.

아무도 없을때 사진 찍을려고 좀 기다렸다.

옆에 유리가 없이 좀 크게 만들어둔 대못상자에 손을 넣어볼 수 있는데,

녹이 다 슬어서 낡은 꼬챙이라도 참 아프더라.

전시가 저렇게 되어있긴 한데 실제로는 저 상자, 뒤집어서 썼단다.

보이지 않는 윗면에도 당연히 못들이 박혀있다.

저걸 걷어차서 흔들고 뒤집으면서 사람을 괴롭혔다니, 참 인간 이하의 발상들이다.


벽관. 드라마에서 이강토가 대못상자에 들어갔다가 바로 벽관에 갇히는데,

애들이 덕분에 벽관까지는 뭔지 알더라.

사진에 보이는 손이 외국인 여성분인데, 웃으면서 벽관에 들어갔다 나와서

이 방은 뭐하는거냐고 남자분한테 물어보는데,

남자분이 뭐라고 대답하는데 (영어라 못알아들음-_-) 깜짝 놀라시더라.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좁은 벽관에 하루종일 갇혀있다보면

근육이 굳어 거동이 불편해지는데, 심할 경우 무릎이 내려앉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벽관 말고도 양팔을 뒤로 묶어서 천장에 달아놓는 고문도 있었다는데,

그러고 풀려나면 팔을 잘못 내리면 양팔이 부러지는 일도 많았다고..;;;;



취조대기실에서는 취조심문소리, 고문실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덜덜 떨고,

취조와 고문을 거쳐서 각자의 옥사로 돌아가기 전에

(사진에는 없지만) 벽관 뒤에 유지되어있는 독방에 가두는데,

그 비명을 들으면서 언제 다시 끌려올지 모르는 공포에 떨게 만들어 둔 구조라고 한다.

어찌나 철저한 계산인지, 어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선조들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민족의식을 잃지않았다며 

독방의 한칸에서는 만세를 부르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보안과청사를 나오면 중앙옥사로 들어간다.

그 중 출입이 통제되어있는 10옥사의 복도. 여기마저 벽관이 있다.

한 사람이 가운데 앉아 수감자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10,11,12옥사가 부채꼴로 건축됬다.

문이 열려있는 옥사에 들어가볼 수 있는데,

냉난방이 안됨은 물론이고, 배수시설, 배변시설 아무것도 없고 높이 달린 창문도 작았다.

일반적인 고시원보다 약간 넓은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시멘트 방에

많을 경우 2-30명이 수감되서 편히 누워 잘수도 없었다고 한다.

수감자들의 대화도 금지되어서 옆방과는 벽을 두드리며 몰래 의사소통했다는 공간,

볕이 좋은 바깥은 분명 더웠는데 나는 이 복도에서 약간의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냥 좀 춥다는 느낌이 아니라, 무서웠다. 심지어 혼자 가서 더 무서웠다.



12옥사에 개방되어 있는, 죄질이 나쁜 죄인들을 따로 수감했다는 독방.

분명 문 밖에서 찍은건데, 복도가 워낙에 좁아서 더 이상 물러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찍은 사진.

블랙베리 카메라로 찍은거라 노출에 한계가 있었겠지만, 여기는 공간 자체가 어둡고, 습했다.

이 옆방에는 윗쪽의 창에서 약간의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공간이 세개 붙어있었다. 여기에 말도 못하고 갇혀있으면 정신병 생기겠더라.


원래 이 이후에 11옥사를 들어가는 코스가 만들어져있는데

바깥의 축제와 관련된 전시준비로 개방이 안되있었다.




그래서 바로 공작사로 이동.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장이었다는데

전시관으로 쓰는 공작사는 방직공장이었단다. 심지어 기술력도 좋았단다.

사진출처는 역시 역사관 홈페이지.

나전칠기를 만드는 공장도 있고, 붉은 벽돌을 만드는 공장도 있었다고 한다.

공작사에는 들어가자마자 영상실이 있는데, 노동실태에 대한 인터뷰를 틀어준다.

아직도 쓰이는 '징역'이라는 단어가 갇혀서 노역을 해야한다는 의미의,

일제때부터 쓰이는 단어라는것도 전시를 보다가 알았다.

옥사에서 나체로 달려서 허들도 하나 넘고 들어와야한다는 공작사에 대한 전시를 지나면

일명'유관순굴'이라고도 부르는 여성옥사의 모형도 전시되어있다.

나는 모형이 전시되있길래 여성옥사는 개방을 안하는줄 알았다.

공작사를 나오면 인공연못이 보이는데, 원래 나전칠기 공작사의 터였고,

해방 이후에 빨래터로 쓸려고 연못을 만들었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사진은 이번에도 역사관 홈페이지에서-_-.

약간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나병 환자들을 따로 수용했다는 한센병사가 있다.

다른 옥사에는 난방시설이 없는데 여기만 난방시설이 있다.

환자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병참기지화를 위해서 노동력을 착취해야되는데,

이런데서 병을 퍼뜨릴수는 없었겠구나 싶었다. 에라이 나쁜놈들-_-




그리고 보이는 추모비. 사진은 역사관 홈페이지.

영혼의 그릇?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처 판 하나하나에 희생되신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데,

국가 추정은 400명정도라지만, 확실히 밝혀진 160여명의 이름만 새겨져있단다.

하나하나 추가될 예정이라고 한다.



추모비가 올려진 단, 그리고 옥사 위치를 표시해둔 벽돌 하나하나가

아까 지나친 공작사에서 만들어진 붉은 벽돌을 재사용한거란다. 

그 증거로 벽돌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만들었다는 의미인 '서울 경(京)'자가 찍혀있다.

근데 한자를 알아보지는 못하겠더라.

착취당한 노역을 기리기 위한거라니 의미도 있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유일하게 촬영이 금지되있는, 사형장이 나온다.


그래서 사진은 역사관 홈페이지에서ㅎㅎㅎ


예전에는 촬영이 됫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닌가;;;;

소름끼쳐서 거의 그냥 지나가다시피 나왔다. 아까 전시관에서 내부 복원된거도 봤으니까.

사형장 앞에는 아주 인상적인 나무, 통곡의 미루나무가 있다.

나무 앞에는 형장으로 끌려가는 남자의, 뒤를 돌아보는 동상이 서있다.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형장으로 끌려간 분들이,

나라를 구하지 못한 한으로 나무를 잡고 통곡했다는 뜻이라는 '통곡의 미루나무'.

옆의 담장이 4M정도 됬다는데, 낮게 허문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내부에 같은 미루나무가 하나 더 있는데,

형장에 한이 너무 많아 통곡의 미루나무만큼은 자라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바로 앞에서는 잡을수가 없어서 좀 멀리 격벽장 앞에서 찍은 사진.

이렇게 보니 담장 내부의 나무가 참 초라하다.

이 사진에서는 역시 소름끼쳐서 슬쩍 보고 지나온 시구문이 작게 보인다.

고문흔적이 심해서 은폐해야하거나 시신인도할 가족이 없는 시신을

200M 밖에 몰래 버리기 위한 터널이었단다.

일제가 막아버린 굴을 약간 복원해둔 것이라는데,

출입이 통제되있긴 하지만 들어가래도 못들어갔을거다.

수감자들을 감시하며 운동시켰다는 부채꼴의 격벽장은 들어가보지는 않고 밖에서 들여다보기만 했다.


잠깐 딴소린데,

워낙에 한이 많은 곳이라 사형장에서 찍은 사진에 깨진 유리쪽에서

귀신이 찍혀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촬영금진가?)

형장이 내려다보이는 뒷쪽의 스타클래스 주민들은 좀 무섭겠다;;


격벽장 앞에서는 서대문 행사의 일환으로 태극기를 손도장으로 찍고있었다.

태극기 사괘의 '곤'의 첫 손도장 현장.

개방되있지 않은 10옥사에 걸린 태극기.

이렇게 푸른 잔디에 붉은 벽돌만 보면 참 평화로운데,

이 공간의 의미라던가, 여기 남았을 한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무겁다.

원래 관람코스에는 이 이후에 여성옥사에 가야하는데,

나는 아까 공작사에 전시된 모형때문에 개방 안하는줄 알고 안갔다;;

덕분에 이후 코스는 끝났다고 생각해서 아예 못갔다. 이거 다시 가야하나-_-

그 이후는 출구로 쓰이는건지 망루도 코스에 있는데, 입구가 그쪽이라 그건 봤음ㅎ

전시실로 쓰인다는 취사장을 못가서 그거 좀 아쉽다.


1500원이라는 입장료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지고 역사관을 나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나올때는 답답하고 무거웠다.


나오는 길, 행사의 취지와 맞지않는 캐릭터가 하나 있어 찍었다.

ㅇㅇ. 케로로. 물론 난 캐릭터 자체로서의 케로로를 기로로를 좋아한다.

어떤 할머니가 행사장에 손주들 데려갔다가 케로로 군모보고 기절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케로로소대 설정이나 복장, 하는 짓 자체가 일본 제국주의 상징같은거라

조금만 더 알아보고 탈을 가져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뭐 물론 멋모르는 어린이들은 좋아했겠지만, 살짝 보이는 뽀로로 친구들로도 충분하잖아;;

독립민주 행사의 취지와, 서대문 형무소라는 공간에 와서는 안될 캐릭터가 왔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만화는 만화로 봐야겠지만, 에이 그래도-_-;;;;;;


아리랑을 부르고 계셨던 중창단. 헤리티지 쇼란다.

뒷쪽의 태극기와 절묘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 천막 안에서 어린이들이 저스케치에 색칠공부같은걸 하고있었다.

음... 저 로봇은 태권V는 아닌데 뭐지...

어떤분이 디제잉만 하고계셨던 마스터브릿지 공연장.

지도를 두고 독도의 위치에 투호놀이를 하던 곳. 앞에 독도는 우리땅이 적혀있다.

나도 각시탈 스타일을 외치는, 마분지로 탈을 만들어서 저고리를 입고 사진을 찍는 포토존.

어린 각시탈들이 나중에도 이 나라를 훌륭히 지켜주기를.


이 이후에 단체OX퀴즈 패자부활전에 갑자기 끼어들어서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에 의해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패물 그릇등을 모아서 의연금을 모은 운동은  국권수호운동이다' (답은 국채보상운동)

같은 역사문제를 잘 풀다가 사회자가 문제가 너무 쉽다며

배꼽은 상체일까 하체일까 하는 문제에서 탈락해서 그냥 집에 왔다.

몇시간 있다가 김장훈, 울랄라세션이 공연을 한다는데 그냥 포기.

(아, 이 행사에 김장훈이라니, 얼마나 적절한 게스트인가ㅎ)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돌아보는데 두시간 반정도 걸렸는데,

너무 피곤해서 네시간정도를 기다리기엔 힘들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기ㅋ절ㅋ




나홀로 관광 인증샷은 소심하게.



아이라인이 번졌더라고-_- 크게 못올리겠다.

서대문형무소 내부에서 찍은 사진.

보안과청사 옆에서 찍었던걸로 기억한다.


음.... 이 다음 홀로 관광은 궁으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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